한국 정당 계보
해방에서 제9회 지방선거까지, 창당·분당·합당의 81년
한국의 정당은 오래 살지 못한다. 평균 수명은 3년 남짓이고, 스무 해를 넘긴 정당은 손에 꼽는다. 그러나 사라진 것은 대개 간판뿐이다. 당사의 현판을 내리고 새 이름을 붙이는 동안 의원과 조직, 후원자와 지역 기반은 거의 그대로 옮겨간다.
이 도표는 그 이동의 궤적을 그린 것이다. 세로축은 시간, 가로축은 계보다. 왼쪽부터 국민의힘계, 제3지대, 민주당계, 진보정당계 순이다. 이념이 아니라 조직과 사람이 실제로 어디서 어디로 옮겨갔는지를 기준으로 나눴다. 각 계보의 본류는 한 열에 곧게 세웠다. 옆 칸으로 벗어난 것은 갈라져 나갔거나 통합을 위해 잠시 존속한 정당이다. 두 계보가 합쳐 만든 국민의당—바른미래당—민생당은 어느 쪽에도 넣기 어려워 사이 열에 따로 두었다. 실선은 계승과 개칭, 점선은 분당, 파선은 합당과 흡수를 뜻한다.
세 갈래의 밀도는 대칭이 아니다. 왼쪽과 가운데 줄기는 끊임없이 갈라지고 다시 합쳐지며 굵어지지만, 오른쪽 줄기는 두 차례 국가에 의해 강제로 절단됐다. 1958년 진보당 등록 취소와 2014년 통합진보당 위헌정당해산이 그것이다. 도표에서 붉은 가위표로 표시된 지점이다.
정당의 이름을 눌러보면 창당 배경, 대표 인물, 그 당을 규정한 쟁점이 아래 칸에 나타난다.
계보도
정당명을 클릭하면 상세가 열립니다제3지대
민주당계
진보정당계
분당
합당·흡수
▮ 존속 기간(막대 길이)
↓ 계승 방향
끝나는 해가 해산·개칭 시점.
2026년 7월 현재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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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을 선택하면 창당 경위, 대표 인물, 주요 쟁점이 이 자리에 표시됩니다.
여섯 개의 국면
시대가 정당을 만들었고, 정당이 시대를 굳혔다지주의 당과 대통령의 당
해방 직후의 정당은 계급의 언어로 갈렸다. 한국민주당은 지주와 실업가, 미군정과 손잡은 엘리트의 조직이었고, 조선공산당은 노동자·농민 조직을 기반으로 삼았다. 좌익은 1949년까지 불법화되어 지하로 사라졌다.
이승만은 어느 당에도 속하지 않은 채 대통령이 됐다가, 재선을 위해 1951년 자유당을 만들었다. 정당이 권력을 만든 것이 아니라 권력이 정당을 만든 첫 사례다. 밀려난 한민당 세력은 야당의 원형이 되었고, 조봉암의 진보당은 평화통일론을 내걸었다가 1958년 등록 취소, 이듬해 당수는 처형됐다.
쟁점 신탁통치 찬반 · 농지개혁 · 발췌개헌(1952) · 사사오입 개헌(1954) · 진보당 사건(1958) · 3·15 부정선거
군복을 벗은 여당
4·19 뒤 집권한 민주당은 신·구파 갈등으로 9개월 만에 무너졌고, 쿠데타 세력은 중앙정보부가 사전 조직한 민주공화당을 앞세워 1963년 민간정부의 외양을 갖췄다. 야당은 흩어졌다 모이기를 반복하다 1967년 신민당으로 수렴한다.
1971년 대선에서 김대중은 박정희를 94만 표 차로 추격했다. 이듬해 유신헌법이 선포되며 대통령 직선제 자체가 사라졌다. 1979년 신민당 총재 김영삼의 의원직 제명은 부마항쟁의 도화선이 됐고, 그 끝에 10·26이 있었다.
쟁점 한일협정 반대(1965) · 베트남 파병 · 3선 개헌(1969) · 10월 유신(1972) · 긴급조치 · YH 사건과 김영삼 제명(1979)
만들어진 야당, 만들어지지 않은 야당
신군부는 기존 정당을 모두 해산하고 여당인 민주정의당과 함께 야당까지 설계했다. 민주한국당·한국국민당은 ‘2중대’로 불렸다. 정치활동 규제에서 풀려난 인사들이 1985년 총선 직전 급조한 신한민주당이 서울에서 압승하며 설계도는 찢어졌다.
대통령 직선제 개헌 요구는 1987년 6월항쟁으로 폭발했고 6·29선언을 끌어냈다. 그러나 야당은 김영삼의 통일민주당과 김대중의 평화민주당으로 갈라졌고, 노태우가 36.6%로 당선됐다. 이 분열이 지역주의 정당 체제의 출발점이 된다.
쟁점 광주 학살의 책임 · 관제 야당 · 2·12 총선 돌풍(1985) · 직선제 개헌 · 후보 단일화 실패 · 5공 청문회
합당이라는 정치 기술
1988년 여소야대 국회는 2년 만에 뒤집혔다. 1990년 민정당·통일민주당·신민주공화당이 합쳐 국회 3분의 2를 넘는 민주자유당이 탄생했다. 야당 지도자가 여당의 문을 열고 들어간 이 거래로 김영삼은 1992년 대통령이 됐다.
집권 초 하나회 해체와 금융실명제는 지지율 90%를 만들었지만, 임기 말 한보 사태와 외환위기가 모든 것을 삼켰다. 1995년 민자당을 떠난 김종필의 자유민주연합은 2년 뒤 김대중과 손잡고 사상 첫 수평적 정권교체를 성사시킨다.
쟁점 3당 합당(1990) · 하나회 척결 · 금융실명제(1993) · 지방자치 부활 · 전두환·노태우 구속 · DJP 연합 · IMF 구제금융(1997)
10년 주기의 시계추
민주당 계열은 김대중·노무현 10년을 집권했고, 보수는 이명박·박근혜 9년으로 되받았다. 그사이 당명은 여섯 차례 바뀌었다. 2003년 열린우리당 분당, 2004년 노무현 탄핵소추와 역풍, 2007년 재통합은 모두 같은 인적 자원의 재배치였다.
변화는 왼쪽에서 왔다. 2000년 창당한 민주노동당이 2004년 정당명부 비례대표제 도입과 함께 10석을 얻어 원내에 진입했다. 그러나 2008년 분당, 2012년 비례경선 부정 논란, 2014년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으로 진보정당의 성장은 꺾인다.
쟁점 햇볕정책과 남북정상회담 · 대선자금 ‘차떼기’ · 노무현 탄핵(2004) · 4대강과 미디어법 · 무상급식 · 통합진보당 해산(2014)
탄핵이 일상이 된 정치
국정농단으로 2017년 박근혜가 파면되자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으로 쪼개졌다. 2020년 총선에서 180석을 얻은 더불어민주당은 2년 뒤 대선에서 0.73%포인트 차로 패했다. 승패의 진폭은 좁아졌지만 대결의 강도는 높아졌다.
2024년 4월 총선에서 야당이 192석을 확보한 뒤, 12월 3일 윤석열 대통령은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회는 두 시간여 만에 해제를 의결했고 이듬해 4월 헌법재판소는 파면을 결정했다. 6월 조기 대선에서 이재명이 당선되며 권력은 다시 넘어갔다.
2026년 6·3 지방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은 16개 광역단체장 중 12곳을 차지했다. 국민의힘은 서울과 대구·경북·경남을 지키고 동시에 치러진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서 선전하며, 보수 재편의 여지를 남겼다.
쟁점 촛불과 대통령 탄핵(2016) · 조국 사태와 검찰개혁 · 준연동형 비례제와 위성정당 · 12·3 비상계엄(2024) · 대통령 파면(2025) · 6·3 지방선거(2026)
· 정당의 존속 기간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정당 등록·말소일을 기준으로 하되, 명칭 변경만 있었던 경우 하나의 막대로 묶었다.
· 계보 구분은 인적·조직적 계승을 기준으로 한 것이며, 이념적 분류가 아니다. 특히 자유당과 민주공화당 사이, 민주공화당과 민주정의당 사이에는 조직적 연속성이 없으며 인적·정치적 계승으로만 이어진다. 한국민주당은 오늘의 기준으로는 우파 정당이지만 민주당계의 출발점이다.
· 원외 소수정당과 단명 정당 일부는 가독성을 위해 생략했다.
· 2026년 7월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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