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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과 신주류, 새천년민주당을 떠나 열린우리당을 짓다

호모 폴리티쿠스 — 결별과 창당의 기록
POLITICAL RETROSPECTIVE · 정치의 인간
Homo Politicus
호모 폴리티쿠스

집을 나선 사람들 — 노무현과 신주류, 새천년민주당을 떠나 열린우리당을 짓다

3김 시대의 마지막 유산을 놓고 벌어진 세대 전쟁.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는 사람들과, 낡은 집을 부숴야 새 정치가 산다는 사람들. 2003년 7월부터 11월까지, 여의도에서는 정당 하나가 통째로 갈라졌다.
사건: 2003년 7월~11월 · 열린우리당 창당 2003.11.11 · 창당 의석 47석

노무현은 2002년 12월, 새천년민주당의 옷을 입고 대통령이 됐다. 그러나 취임 첫해가 끝나기도 전에, 그는 그 옷을 벗었다. 대통령이 자신을 당선시킨 여당을 스스로 걸어 나온 사건 — 그것이 2003년 가을 여의도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표면적으로는 정당 하나의 분당이었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3김 시대’로 불리던 낡은 정치 문법과, 그것을 끝내려는 세대 사이의 정면충돌이었다.

왜 갈라섰나 — 낡은 집, 새로운 세입자

새천년민주당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만든 정당이었다. 노무현은 이 당의 국민경선을 통해 대선 후보가 됐고 대통령이 됐지만, 당의 실질적 주도권은 여전히 김대중계 옛 인사들 — 이른바 ‘동교동계’와 구주류에 있었다. 이들은 호남을 지역 기반으로 한 조직과 자금, 공천권을 쥐고 있었고, 노무현 및 그와 가까운 소장파·개혁파 의원들은 이를 “국민이 아니라 계보에 충성하는 낡은 정치”라고 규정했다.

노무현의 최측근이자 호남 출신 소장 의원인 천정배·신기남·정동영 — 언론은 이들을 성씨를 따 ‘천신정’이라 불렀다 — 은 2003년 초부터 당의 구조 자체를 바꾸자는 ‘정풍(整風)운동’을 주도했다. 이들의 주장은 단순했다. “3김 시대의 지역 기반, 계보 정치, 사당화된 조직으로는 더 이상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없다.” 구주류는 이를 자신들의 기득권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였고, 두 세력의 갈등은 봉합되지 않았다.

배경 한 줄 정리. 노무현 정부 초기, 민주당은 ‘구주류(동교동계·호남 기득권)’와 ‘신주류(친노·개혁파·소장파)’로 사실상 두 개의 당처럼 나뉘어 있었다. 정풍운동은 이 균열을 봉합이 아니라 결별로 이끈 계기였다.

등장인물

인물로 보는 창당 전선
노무현대통령
신당 창당에 초기엔 “민주당을 깨서는 안 된다”며 반대 입장이었으나, 신주류의 탈당이 기정사실화되자 결국 참여 의사를 밝힌다. 다만 창당 시점에는 형식상 무소속을 유지했다.
천정배 · 신기남 · 정동영천신정
호남 출신 소장·개혁파 3인방. 정풍운동을 주도하며 구주류와 정면충돌, 결국 탈당 대열을 이끈다.
김근태 · 이해찬
개혁파 중진. 이해찬은 새 정당의 이름 ‘열린우리당’을 직접 작명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김원기 · 정대철 · 임채정
신주류 원로 그룹. 이후 열린우리당의 초대 지도부 구성에 참여한다.
박상천구주류
잔류 새천년민주당 최고위원. 신주류 이탈 이후 당 대표직을 승계하며 잔류파를 재정비한다.
조순형구주류
2003년 11월 전당대회에서 잔류 새천년민주당 대표로 선출. 이후 노무현 탄핵소추를 주도하게 된다.
이부영 · 김영춘 · 김부겸 한나라당 이탈
한나라당 개혁파 의원들. 2003년 7월 7일 5명이 함께 탈당해 ‘독수리 오형제’로 불렸고, 이후 열린우리당 창당에 합류한다.
김원웅 · 유시민 개혁국민정당
개혁국민정당 소속 의원 2명. 11월 3일 탈당해 창당 대열에 마지막으로 합류한다.

균열에서 창당까지

2003년 7월, 가장 먼저 움직인 것은 한나라당 쪽이었다. 이부영, 김영춘, 김부겸 등 개혁 성향 의원 5명이 한나라당을 뛰쳐나왔다. 두 달 뒤인 9월 20일, 이번엔 새천년민주당에서 천정배·신기남을 포함한 35명의 의원이 한꺼번에 탈당을 선언했다 — 창당을 향한 신호탄이었다. 노무현은 이 흐름에 처음엔 선을 그었다. “여당을 쪼개는 방식으로 국정을 운영할 수는 없다”는 것이 그의 공개 입장이었다. 그러나 신주류 대부분이 되돌릴 수 없는 결심을 굳히자, 그는 결국 새 정당에 함께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10월, 이해찬이 새 정당의 이름을 ‘열린우리당’으로 짓는다. 3김 시대 정당들이 즐겨 쓰던 한자어 당명 대신 순우리말을 택한 것 자체가, 낡은 정치와의 결별을 상징하는 몸짓이었다. 이후 원외 인사들의 탈당이 이어지고, 11월 3일 개혁국민정당의 김원웅·유시민이 마지막으로 합류하면서 대오가 갖춰졌다.

“민주당이 가진 정통성은 그대로 갖고 가겠다. 다만 신당 창당에는 관여하지 않는다.” — 노무현, 탈당을 둘러싼 초기 입장 표명 중

2003년 11월 11일, 열린우리당이 공식 창당됐다. 의석은 47석 — 민주당 탈당파 40명, 한나라당 탈당파 5명, 개혁국민정당 2명으로 구성된, 원내 제3당이자 사상 초유의 ‘미니 여당’이었다. 반면 잔류 새천년민주당은 여전히 60석을 가진 원내 제2당으로, 오히려 의석수로는 새로 태어난 여당보다 우위에 있었다. 두 정당은 이제 한 뿌리에서 나온 완전한 별개의 정치 세력으로 서로를 마주보게 됐다.

여기서 눈여겨볼 대목이 있다. 노무현은 창당에 뜻을 함께하겠다고 밝혔음에도, 대통령 신분으로 곧바로 열린우리당에 입당하지는 않았다. 그는 한동안 공식적으로는 ‘무당적’ 상태를 유지했다. 그러나 공개 발언에서는 계속 열린우리당에 우호적인 태도를 보였고, 이것이 훗날 중앙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선거 중립 위반 지적을 받는 빌미가 됐다 — 그리고 그 논란은 2004년 3월, 그를 헌정사상 최초의 탄핵 대통령으로 만드는 도화선이 된다.

타임라인 — 결별에서 창당까지

A TIMELINE OF THE SPLIT · 2003
2002.12
새천년민주당

노무현, 제16대 대통령 당선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대통령에 당선된다. 그러나 당의 실권은 여전히 구주류(동교동계)에 있었다.

2003 상반기

정풍운동 시작

천정배·신기남·정동영(‘천신정’) 등 신주류가 당의 계보 정치·지역 기반 구조를 개혁하자는 정풍운동을 주도하며 구주류와 충돌한다.

2003.07.07
한나라당

한나라당 개혁파 5인 탈당

이부영·김영춘·김부겸·안영근·이우재 5명이 한나라당을 탈당한다. 이들은 ‘독수리 오형제’로 불리며 훗날 열린우리당에 합류한다.

2003.09.20
새천년민주당

신주류 35명, 민주당 집단 탈당

천정배·신기남·김근태·이해찬·정대철·정세균 등 35명의 의원이 한꺼번에 탈당을 선언한다. 창당을 향한 결정적 신호탄이었다.

2003.09.23
새천년민주당

추가 탈당 — 김덕규·배기선

신주류 이탈 흐름이 이어지며 탈당 규모가 점차 확대된다.

2003.10.22

당명 ‘열린우리당’ 확정

이해찬 의원이 작명한 ‘열린우리당’이 새 정당의 이름으로 결정된다. 한자어 대신 순우리말을 택한 최초의 민주당계 정당이 된다.

2003.10.23

원외 인사 대거 합류

유선호·오영식·우상호 등 원외 인사들이 대거 새천년민주당을 탈당해 창당 준비 대열에 합류한다.

2003.11.01–03

최용규 · 김원웅 · 유시민 합류

새천년민주당 최용규에 이어, 개혁국민정당의 김원웅·유시민이 마지막으로 합류하며 창당 대오가 완성된다.

2003.11.11
열린우리당창당

열린우리당 공식 창당 — 47석

민주당 탈당파 40명, 한나라당 탈당파 5명, 개혁국민정당 2명으로 구성된 원내 제3당이 출범한다. 노무현은 이때 공식 입당하지 않고 무당적을 유지했다.

2003.11 하순
새천년민주당

잔류 민주당, 조순형 대표 체제 출범

박상천이 대표직을 잠시 승계한 뒤, 전당대회에서 조순형이 신임 대표로 선출되며 재정비에 나선다. 그는 넉 달 뒤 노무현 탄핵소추를 주도하는 인물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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