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폴리티쿠스
외연(外延)의 정치사
— 안을 지킬 것인가, 밖을 넓힐 것인가
1990년 삼당 합당에서 노무현의 대연정 제안을 거쳐 2026년 이재명 대통령의 통합 행보까지, 한국 정당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지지 기반의 경계를 다시 그으려 했다. 다만 그 출발점은 매번 달랐다 — 위기에서 내민 손이 있었고, 힘이 다 빠진 뒤에 던진 승부수가 있었으며, 가장 든든한 순간에 스스로 넓히려 나선 시도도 있었다.
정치인은 두 개의 상반된 명제 사이에서 산다. 안을 단단히 다질 것인가, 밖으로 넓힐 것인가. 지지 기반이 좁으면 정권은 오래가지 못하고, 무리하게 넓히면 원래의 지지층이 등을 돌린다. 한국 현대 정치사에서 ‘외연 확장’이라는 표현이 처음 등장한 순간부터, 이 딜레마는 형태를 바꿔가며 반복되어 왔다.
1990년의 물리적 합당, 2005년의 권력 이양 제안, 그리고 2026년 현재진행형의 통합 행보. 세 장면은 서로 다른 시대, 다른 인물의 이야기지만 하나의 질문을 공유한다 — 정당은 자신이 아닌 것과 손을 잡을 때,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는가.
여야 통합, 거대 여당의 탄생
권력을 걸고 지역주의에 도전하다
가장 든든한 시점에, 자발적으로 넓히다
삼당 합당 — 밖을 통째로 안으로 들이다
노태우의 여당이 두 야당을 흡수하며, 한국 정치의 지형 자체를 다시 그렸다.
1990년 1월 22일, 노태우 대통령의 민주정의당은 김영삼의 통일민주당, 김종필의 신민주공화당과 전격 합당을 선언했다. 세 갈래로 나뉘어 있던 여야의 경계가 하루아침에 지워지고, 원내 의석의 3분의 2를 넘나드는 거대 여당 ‘민주자유당’이 탄생했다. 이는 단순한 정계 개편이 아니라, 노태우 정부가 취약한 정통성과 여소야대 국회라는 이중의 위기를 정면으로 돌파하기 위해 선택한 가장 극단적 형태의 ‘외연 확장’이었다.
합당의 명분은 ‘구국의 결단’이라는 정치적 수사로 포장되었지만, 실질적 효과는 지역주의 구도의 고착이었다. 호남을 기반으로 한 김대중의 야당만이 홀로 남겨졌고, 이는 이후 수십 년간 한국 정당 정치를 규정하는 영남 대 호남의 대립 구도를 굳히는 결과로 이어졌다. 외연을 넓히려는 시도가 역설적으로 또 다른 경계를 더 선명하게 그어버린 셈이다.
노무현의 대연정 — 권력을 걸고 던진 승부수
스스로 권력의 절반을 내려놓겠다며, 지역구도라는 벽에 정면으로 부딪혔다.
노무현 대통령은 1990년 삼당 합당에 합류하지 않고 홀로 남았던 정치인이었다. 그가 훗날 밝힌 회고에 따르면, 지역주의를 넘어서야 한다는 문제의식은 바로 그 순간부터 그의 안에서 자라났다. 2005년, 임기 중반을 넘긴 대통령은 마침내 그 문제의식을 정책으로 꺼내 들었다.
선거구제를 소선거구제에서 중대선거구제로 바꾸는 데 야당인 한나라당이 동의한다면, 국무총리 지명권을 포함한 내각 구성권 자체를 한나라당에 넘기겠다는 제안이었다. 여당 지지자 다수조차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 파격이었다. 노 대통령이 내세운 명분은 한결같았다 — 영남에서는 보수 정당만, 호남에서는 민주당 계열만 당선되는 구조를 선거제도 개혁으로 깨뜨리자는 것.
내가 원하는 것은 대연정보다는 선거제도의 개혁이다. 정권을 내놓는 한이 있더라도 지역구도만은 꼭 고치고 싶다. — 노무현 대통령, 2005년 7월 29일 기자간담회
그러나 한나라당은 제안 발표 직후 신속하고 단호하게 거부 의사를 밝혔다. 여권 내부에서도 이 구상을 “수구 세력을 향한 햇볕정책”이라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왔고, 열린우리당 일부 의원들의 이탈까지 겹치며 논쟁은 정치적 소득 없이 가라앉았다. 밖을 향해 내민 손이 안팎 모두에서 지지를 얻지 못한, 외연 확장 실패의 교과서적 사례로 남았다.
이재명의 선택 — 궁지가 아니라 정점에서 내민 손
앞선 두 장면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 이번 외연 확장은 벼랑 끝이 아니라, 가장 든든한 자리에서 시작됐다.
1990년의 삼당 합당은 여소야대와 정통성 위기 속에서 나온 생존의 셈법이었다. 2005년의 대연정 제안은 노무현 스스로 “우리 정부가 약체정부”라 부를 만큼 힘이 빠진 자리에서 던진 마지막 승부수였다. 2026년 이재명 대통령의 외연 확장은 이 계보에서 이질적이다. 그는 위기에서 손을 내민 것이 아니라, 대통령직과 지방권력을 함께 쥔 가장 안정적인 국면에서 스스로 그 확장을 선택했다.
2026년 6월 지방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은 광역단체장 16곳 중 12곳을 가져갔고, 국정 지지율은 한때 60퍼센트를 넘나들었다. 국회 역시 여당이 안정적 다수를 쥐고 있다. 실권도, 명분의 위기도 없는 상태에서 그가 꺼낸 말은 확장을 향한 ‘방어적 제안’이 아니라 ‘공세적 기획’에 가까웠다.
2026년 7월 1일, 이재명 대통령은 청와대 상춘재에서 문재인 전 대통령과 오찬을 함께했다. 더불어민주당 차기 당 대표 선출을 앞두고 당내 계파 갈등이 표면화되던 시점, 두 사람의 만남 자체가 메시지로 읽혔다. 문 전 대통령은 “국민통합으로 나아가려면 당내 단합이 출발점”이라며, 민주당이 먼저 뭉치고 그 위에서 이른바 ‘빛의 혁명’을 함께한 세력들과 더 큰 단합을 이뤄야 한다고 조심스러운 순서를 제안했다. 힘이 없을 때 내부부터 다지자는, 앞선 두 시대의 교훈에 가까운 화법이었다.
이에 이재명 대통령은 내부 결속의 중요성에는 공감하면서도, 여유 있는 위치에서만 가능한 다른 셈법을 내놓았다.
속이 단단해야 한다. 동시에 끊임없이 외연을 확장하면서 구조적 다수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 두 가지를 조화롭게 해야 한다. — 이재명 대통령, 2026년 7월 1일 청와대 오찬
“조화롭게 해야 한다”는 말은, 힘이 없어 어느 한쪽을 택해야 했던 노무현의 처지와는 다른 위치에서 나온 발언이다. 단합과 확장을 순서가 아니라 동시에 쥘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 자체가, 지금 여권이 서 있는 자리의 안정성을 방증한다.
물론 대가가 전혀 없지는 않았다. 서울시장 선거에서는 오세훈에게 패했고, 국회의원 재보궐 14곳 중 4석을 내주며 무소속 한동훈이 부산에서 당선되는 등, 위축되어 있던 보수 진영에 재기의 발판을 일부 내줬다는 비판도 나온다. 그럼에도 이 흔들림이 정권의 기반 자체를 위협하는 수준은 아니라는 점에서, 이번 외연 확장은 ‘버티기 위한 확장’이 아니라 ‘더 크게 이기기 위한 확장’에 가깝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 흐름은 아직 결론이 나지 않은 현재진행형의 이야기다. 다만 분명한 것은, 이재명 정부가 확장을 선택한 시점이 앞선 두 사례와 달리 궁지가 아니라 정점 근처였다는 사실이다. 그 선택이 어떤 궤적을 그릴지는 당장 다가올 전당대회와 그 이후의 국정 운영 속에서 드러날 것이다.
세 개의 출발점
세 장면을 나란히 놓으면, 겉으로는 같은 말 ‘외연 확장’을 쓰지만 그 출발점은 저마다 달랐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1990년은 정통성의 위기에서, 2005년은 힘이 다 빠진 약체정부의 자리에서 나온 승부수였다. 두 경우 모두 확장은 궁지에 몰린 자가 던지는 마지막 패에 가까웠다.
2026년의 장면은 이 계보에서 갈라진다. 이재명 정부는 안정적 지지율과 여대야소 구도, 지방권력 다수 확보라는 조건 위에서 확장을 말하고 있다. 벼랑 끝에서 내민 손이 아니라, 손을 내밀지 않아도 될 만큼 든든한 자리에서 스스로 내민 손이라는 점에서, 이번 시도는 앞선 두 사례와 근본적으로 다른 실험이다.
위기에서 넓히려던 시도는 지형을 재편했고(1990), 약체에서 넓히려던 시도는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 채 소진됐다(2005). 그렇다면 힘이 있을 때 스스로 넓히려는 시도는 어떤 결말에 이를까 —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아직 쓰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