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its Korea

노무현 새천년민주당 탈당, 열린우리당 창당 협조, 그리고 탄핵까지

탄핵의 밤 — 2004년 3월 12일
역사는 되풀이된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읽는다 · RETROSPECTIVE
溫 故 知 新
온고지신 — 옛것을 되짚어 오늘을 비추다

새벽의 표결 — 노무현을 탄핵한 그날, 그의 옛 정당은 무엇을 선택했나

2004년 3월 12일 새벽, 자신이 몸담았던 새천년민주당이 한나라당과 손잡고 대통령 노무현을 국회에서 탄핵했다. 그 대열 안에는 최고위원 추미애가 있었다 — 말리다가, 끝내 동참한 사람으로.
사건: 2004년 3월 12일 오전 11시 55분경 · 표결 결과 찬성 193 · 반대 2 · 재적 272명 중 195명 표결 참여

본회의장의 문은 사흘째 잠겨 있었다. 열린우리당 의원들은 의자와 서랍으로 통로를 막고, 끈으로 문을 묶은 채 그 자리에서 잠을 청했다. 그들이 막으려 했던 것은 단 한 장의 종이 — 대통령 탄핵소추안이었다. 그리고 새벽 3시 50분, 한나라당과 새천년민주당 의원 수십 명이 본회의장 중앙 통로로 기습적으로 밀고 들어왔다. 몸싸움이 시작됐다. 몇 시간 뒤, 대한민국 헌정사상 처음으로 국회가 현직 대통령을 탄핵하는 표결이 이루어졌다.

찬성 193표, 반대 2표. 이 표는 노무현 대통령 자신이 2년 전까지 몸담았던 정당, 새천년민주당의 손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가 대통령이 되도록 밀어올린 바로 그 정당이, 그를 끌어내리는 데 앞장선 것이다.

배신, 그리고 배신감 — 새천년민주당의 셈법

이야기는 표결 하루 전이 아니라, 1년도 더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노무현은 2003년 새천년민주당을 탈당해 열린우리당 창당을 도왔다. 자신을 대통령으로 만든 당의 구주류(동교동계)와 결별한 셈이었다. 민주당 입장에서 이는 배신이었다 — 자신들이 대통령 후보로 세우고, 정권을 함께 만든 사람이 등을 돌리고 새 집을 차렸다는 인식이었다.

여기에 2004년 2월 18일, 노무현이 경인 지역 언론과의 합동 회견에서 “국민이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을 지지해줄 것으로 기대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면서 불이 붙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이 발언이 공무원의 선거 중립 의무를 위반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3월 5일, 민주당 대표 조순형은 특별 기자회견을 열어 대통령의 사과와 재발 방지 약속을 요구하며, 이를 거부할 경우 탄핵소추안을 발의하겠다고 못박았다. 노무현은 사과를 거부했다. 사흘 뒤인 3월 9일, 민주당과 한나라당은 공동으로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방송 토론에 출연한 유시민(당시 개혁국민정당)은 이렇게 지적했다 — 탄핵 논의는 그날 갑자기 나온 게 아니라, 노무현 취임 14일 만인 2003년 3월부터 이미 여야 사이에서 100건 넘게 거론되어온 이야기였다는 것이다. 즉 3월 12일의 표결은 돌발 사고가 아니라, 오래 누적된 정치적 앙금이 선거법 위반 논란을 계기로 터진 결과에 가까웠다.

추미애, 말리던 사람에서 표를 던진 사람으로

그 무렵 추미애는 새천년민주당의 최고위원이었다. 2002년 대선 당시 그는 ‘노무현 후보 선거대책위원회’ 국민참여운동본부장을 맡아 노무현 정부 탄생에 직접 힘을 보탠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2년 뒤, 자신이 당선시킨 대통령을 탄핵하는 표결의 한복판에 서게 된 것이다.

본인의 훗날 회고에 따르면, 추미애는 처음에는 당내에서 탄핵을 만류하는 쪽에 섰다. 그러나 최고위원으로서 당의 결정이 굳어지자 “마지막에 불가피하게 탄핵 대열에 동참”했다고 그는 말한다. 말리다가, 결국 표를 던진 것이다. 그는 이후 여러 인터뷰에서 이 선택을 “내 정치 인생 중 가장 큰 과오”, “가장 큰 실수”라고 규정했다.

“당시 최고위원으로서 마지막에 불가피하게 탄핵 대열에 동참했던 것은 사죄한다.” — 추미애, 2021년 인터뷰 중 회고

표결 직후 여론은 민주당과 한나라당의 예상을 완전히 벗어났다. 탄핵 이틀 전인 3월 10일 KBS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78%가 탄핵에 반대한다고 답했을 정도로, 탄핵은 애초에 압도적인 반대 여론 위에서 강행된 것이었다. 표결 직후 전국 곳곳에서 ‘탄핵무효’를 외치는 촛불집회가 밤마다 이어졌고, 광장의 분노는 고스란히 탄핵을 주도한 정치인들을 향했다.

그 역풍의 한가운데서, 추미애는 국민 앞에 몸을 낮췄다. 그는 ‘삼보일배’ — 세 걸음 걷고 한 번 절하는 전통 참회의 방식으로 거리에서 사죄에 나섰다. 표를 던진 정치인이 스스로 몸을 낮춰 용서를 구하는 장면은, 탄핵 정국에서 가장 강렬한 이미지 중 하나로 남았다.

훗날의 기록. 추미애는 2016년 더불어민주당 대표 경선 과정에서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이 내 정치인생 중 가장 큰 실수”라며 거듭 사과했고, 그해 8월 31일에는 봉하마을 노무현 묘역을 찾아 눈물의 참배를 하기도 했다. 2021년 대선 경선 당시에도 그는 “당에서 말리는 역할을 했지만 최고위원으로서 불가피하게 동참했다”는 취지의 해명을 반복해야 했다.

부메랑 — 총선이 되돌려준 답

탄핵안은 5월 14일 헌법재판소에서 기각되며 노무현은 직무정지 63일 만에 대통령직에 복귀했다. 그러나 정치적 심판은 이미 그 전, 4월 15일 제17대 총선에서 먼저 내려졌다. 탄핵 역풍에 힘입어 열린우리당은 152석으로 원내 과반을 차지했다. 반면 탄핵을 주도한 새천년민주당은 9석의 소수 정당으로 주저앉아, 민주노동당에도 밀리는 제4당으로 전락했다.

타임라인 — 63일의 기록

A TIMELINE OF THE IMPEACHMENT · 2004
2003.09–11
열린우리당

노무현, 새천년민주당 탈당 · 열린우리당 창당 지원

대통령이 자신을 당선시킨 정당을 떠나 신당 창당을 돕는다. 민주당 구주류와의 관계는 이때 사실상 끊어진다.

2004.02.18

노무현, 경인 지역 언론 합동회견

“개헌저지선까지 무너지면…” 등 발언으로 열린우리당 지지를 유도했다는 논란이 시작된다.

2004.03.05
새천년민주당

조순형 대표, 대통령에 사과 요구

사과와 재발 방지 약속이 없으면 탄핵소추안을 발의하겠다고 특별 기자회견에서 경고한다.

2004.03.09
새천년민주당한나라당

탄핵소추안 공동 발의

대통령이 사과를 거부하자, 민주당과 한나라당이 자유민주연합과 함께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한다.

2004.03.10

여론조사: 국민 78% “탄핵 반대”

KBS 조사에서 응답자 대다수가 탄핵에 반대한다는 결과가 나오지만, 표결 강행은 멈추지 않는다.

2004.03.11
열린우리당

본회의장 점거 농성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의자와 집기로 통로를 막고 표결을 저지하며 사흘째 점거 농성을 이어간다.

2004.03.12
새벽

본회의장 기습 진입 · 몸싸움

오전 3시 50분경 한나라당·민주당 의원들이 본회의장 중앙 통로로 밀고 들어오고, 이를 막으려는 열린우리당 의원들과 격렬한 몸싸움이 벌어진다.

2004.03.12
11:55
가결

탄핵소추안 국회 통과

재적 272명 중 195명 표결, 찬성 193표 반대 2표로 가결. 대통령 직무가 정지되고 고건 국무총리가 권한대행을 맡는다. 이 표결에 추미애도 있었다.

2004.03~04

전국 ‘탄핵무효’ 촛불집회 · 추미애 삼보일배

거센 역풍 속에 추미애는 거리로 나가 삼보일배로 국민에게 사죄한다.

2004.04.15
열린우리당

제17대 총선 — 탄핵 역풍

열린우리당 152석으로 원내 과반 확보. 탄핵을 주도한 새천년민주당은 9석으로 몰락, 제4당으로 전락한다.

2004.05.14
기각

헌법재판소, 탄핵소추안 기각

“헌법이나 법률을 중대하게 위반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며 기각. 노무현은 직무정지 63일 만에 대통령직에 복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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