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생 대차대조표
여의도의 생존왕, 그의 선택은 늘 남는 장사였을까
뉴욕의 사업가에서 김대중의 비서실장으로, 국정원장에서 다시 원로 정치인으로. 반세기 넘게 정치판에서 살아남은 박지원의 갈림길들만 추려, 그가 실제로 ‘선택’한 순간에 한해 득실을 결산해봤다.
박지원은 1942년 전라남도 진도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사업가로 성공한 뒤, 정치적 망명 중이던 김대중을 만나며 정치인의 길에 들어섰다. 이후 문화관광부 장관, 대통령 비서실장, 국가정보원장을 지내며 다섯 개 정부를 겪은 현역 정치인이 됐다. 아래 목록은 그에게 벌어진 일 전체가 아니라, 그가 직접 결정을 내린 순간만 추린 것이다. 구속이나 낙선처럼 그의 선택이 아니라 결과로 주어진 사건은 뺐다 — 감방에 가기로 ‘선택’한 사람은 없으니까.
망명 중인 김대중을 재정적으로 돕기로 하다
무역업으로 성공한 사업가였던 박지원은 정치적 망명 상태였던 김대중의 생활을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당시 그는 잃을 것이 많은 사업가였다.
혼재권위주의 정권 아래 반정부 인사를 돕는 것은 위험을 자초하는 선택이었지만, 훗날 정계 입문의 발판이 됐다는 점에서 결과적 이득도 있었다.
전두환 방미 환영위원장을 자처하다
같은 시기 뉴욕한인회장이었던 박지원은 전두환 대통령의 방미 환영 행사를 직접 주도하기로 했고, 이후 현지 언론에 강력한 지도자론에 공감하는 취지의 발언을 남겼다.
본인 이익김대중을 돕는 동시에 당시 집권 세력과도 우호적 관계를 만든 것은, 정치적 위험을 양쪽에 분산시킨 처신으로 읽힌다.
DJ의 대변인으로 정치 전면에 서기로 하다
김대중의 최측근 대변인을 자원하며 ‘야당의 입’으로 불렸고, 이후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본인 이익정치적 상승을 택한 결정으로, 이후 김대중 정부의 핵심 실세로 성장하는 발판이 됐다.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대북송금을 주도하기로 하다
비서실장으로서 역사적인 6·15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해 현대그룹을 통한 대북송금을 직접 주도하기로 결정했다. 이 결정은 3년 뒤 특검 수사와 실형으로 그에게 되돌아왔다.
혼재국가적 외교 성과에는 기여했지만, 법적 위험을 스스로 떠안기로 한 선택이었다. 그 대가로 동료들보다 오래 옥살이를 한 것은 그의 선택이라기보다는 결과였다.
문재인에 맞서 당권에 도전하기로 하다
“특정 계파(친노)의 당으로 전락하느냐”며 당대표 경선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표결 결과는 문재인의 승리로 끝났다.
본인 이익결과와 별개로, 권력에 도전하기로 한 결정 자체는 자신의 입지를 넓히려는 시도였다. 낙선은 선택이 아니라 결과였다.
민주당을 떠나 국민의당에 합류하기로 하다
친문 주류에 밀려 입지가 좁아지자 안철수의 국민의당行을 택했다. 이후 목포에서 당선돼 원내대표를 맡았다.
본인 이익온라인 지지층의 거센 반발을 감수하고서라도 개인의 정치 생명을 이어가는 쪽을 택했다.
대선 참패 책임을 지고 스스로 물러나기로 하다
안철수 후보가 3위로 낙선하자, 대표였던 박지원은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지도부 총사퇴를 택했다.
손해 감수이 목록에서 유일하게, 자리를 지킬 수도 있었던 상황에서 스스로 내려놓기로 한 선택이다.
보수정당과의 합당에 반대하고 갈라서기로 하다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의 합당 움직임에 반대하며 호남계 의원들과 함께 탈당, 민주평화당 창당에 합류했다.
혼재호남 정체성을 지킨다는 명분과, 보수정당에 흡수되면 설 자리가 없어진다는 실리적 계산이 동시에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낙선 세 달 만의 국정원장 제안을 수락하다
총선 낙선 이후 방송 패널로 지내던 중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원장 제안을 받아들였다. 대북송금으로 실형을 산 전력이 있는 인물의 발탁이라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본인 이익원외로 밀려난 지 석 달 만에 정부 최고위직 제안을 받아들인, 그의 정치 인생에서 가장 극적인 반전의 순간이다.
6년 만에 민주당으로 돌아가기로 하다
정청래 최고위원 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복당을 신청했고, 승인 직후 “이재명을 중심으로 뭉쳐야 한다”고 밝혔다.
본인 이익정권을 잃은 민주당이 재정비에 나서는 국면에서, 원로로서 다시 입지를 확보하려는 선택이다.
지역구를 옮겨 재도전하기로 하다
과거의 목포가 아닌 전남 해남·완도·진도에서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출마하기로 했다. 결과는 당선, 5선 고지였다.
본인 이익국민의당 이탈 이후 8년 만에 원내 복귀를 시도한 결정으로, 정치 생명을 다시 연장하는 선택이었다.
이재명의 원로 중재자를 자임하다
이재명 대통령의 강력한 지지자로 자리하면서, 당내 동향을 언론에 전하는 역할을 스스로 맡고 있다. 최근에는 송영길·김민석의 전당대회 연대 구상을 공개적으로 전하기도 했다.
본인 이익현직 권력에 근접한 원로로서 영향력을 유지하려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선택이다.
결산표
| 판정 | 해당 선택 | 건수 |
|---|---|---|
| 본인 이익 | 1981년 전두환 환영, 1987~97년 정치 입문, 2014년 당권 도전, 2016년 국민의당 합류, 2020년 국정원장 수락, 2022년 복당, 2024년 지역구 이동 출마, 2025~ 원로 중재자 자임 | 8 |
| 손해 감수 | 2017년 대선 참패 책임지고 총사퇴 | 1 |
| 혼재 | 1970년대 DJ 지원, 2000년 대북송금 주도, 2018년 국민의당 분당 | 3 |
편집자 주
구속, 낙선, 정권교체 후 고발처럼 그의 선택이 아니라 그에게 벌어진 일들은 이번 결산에서 뺐다. 그렇게 걸러내고 나니 흥미로운 그림이 남았다 — 정작 그가 스스로 무언가를 내려놓기로 한 순간은 2017년 지도부 총사퇴, 단 한 번뿐이었다. 나머지 열두 번의 선택은 결과가 어떻든 대체로 자신의 입지를 넓히거나 지키는 쪽을 향해 있었다.
다만 이것이 그의 진짜 속내를 안다는 뜻은 아니다. 2000년 대북송금처럼 본인은 “역사적 소명의식에 따른 행위”였다고 주장해 온 선택도 있고, 법원 역시 남북관계 기여를 양형에 참작한 바 있다. 겉으로 드러난 선택과 그 결과만으로 사람의 진심을 재단하기는 어렵다는 점은 밝혀둔다.